【의왕저널6호-15면】 의왕시의 원림형 도시농업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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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저널6호-15면】 의왕시의 원림형 도시농업을 꿈꾸며
  • 김미나 기자
  • 승인 2023.06.05 0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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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교수 (한세대학교 겸임)

원림(園林)이란 자연에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자신의 생활공간입니다. 그 안에 정자를 짓기도 하고 나무나 꽃을 심고 텃밭을 가꾸기도 합니다.

‘뜰 앞엔 높이 두어 자 되는 가림벽을 하나 둘러두고, 담 안에는 갖가지 화분을 놓아둔다. 석류, 치자, 백목련 같은 것들을 각기 종류대로 갖추는데, 국화를 가장 많이 갖추어서 모름지기 마흔여덟 가지는 되어야 겨우 구색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뜰 오른편엔 조그마한 연못을 파는데, 사방이 수십 걸음을 넘지 않을 정도로 한다. 연못에서 연꽃 몇십 포기를 심고 붕어를 기른다. 따로 대나무를 쪼개 홈통을 만들어서 산골짜기의 물을 끌어 연못에 대고, 연못에서 넘치는 물은 담장 구멍을 통해 채마밭으로 흐르게 한다. 채마밭은 수면처럼 고르게 잘 갈아야 한다. 그런 다음 네모반듯해지게 밭을 구획해서 아욱, 배추, 파, 마늘 등을 심되, 종류별로 나누어 서로 섞이지 않게 한다. 씨를 뿌릴 때는 반드시 고무래를 사용하여, 싹이 났을 때 보면 아롱진 비단 물결 같은 무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채마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떨어진 채마밭 둘레에는 오이도 심고 고구마도 심지만, 장미 수천 그루를 울타리로 심어 놓는다. 그러면 초봄과 초여름이 교차되는 때 짙은 향기가 채마밭을 둘러보러 나온 사람의 코를 찌를 것이다.’ 채마밭을 텃밭으로 바꾼다면, 2023년 초여름, 불과 며칠 전 텃밭 취미를 가진 누군가가 썼을 이 글은 원림형 채마밭을 설명한 다산 정약용의 기록입니다. 한적한 공간에서 텃밭을 일구는 누군가의 글처럼, 시공을 초월한 이 글이 놀랍지 않습니까?

‘돌이켜 생각하니 무술년 무렵 종강에 살 때는 낡은 집 세 칸에 붓과 벼루, 칼과 자가 뒤섞여 있었다. 이런 것이 싫증 나서 자그만 채마밭에 자주 앉아 있었다. 그러면 채마밭의 콩 넝쿨과 무꽃 위에는 벌과 나비가 한가로이 날아들어, 비록 밥 짓는 연기가 여러 번 끊겼지만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발해고의 저자인 실학자 유득공에게 있어서 채마밭인 도시농업 텃밭은 휴식과 힐링, 사색의 장소였습니다. 신선한 먹을거리의 산실이며 글감을 다듬고, 연구를 위한 재충전의 소중한 연구의 장소입니다. 조선시대 채마밭, 남새밭인 원림형 채마밭은 사대부에게 안빈낙도의 철학적 사고를 갖춘 공간이었습니다. 밭을 일궈 채소를 기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의 밭을 일궜고, 채소가 아니라 정신을 기르고 수확했습니다.

지금 상추 일변도인 먹을거리 목적의 텃밭이나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이렇게 행복하다고 뽐내고 싶어하는 텃밭을 일구는 우리에게 채마밭에 장미도 심고, 마음의 밭을 일구던 우리의 선배 사대부들은 무엇이라 얘기하고 있을까요? 도시농업의 문화를 부러워하는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을 능가하는 아우라가 원림형 채마밭는 있습니다.

도시농업은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린 것들, 자연과 생태를 회복하며 감성과 추억을 꺼내는 소중한 보물지도입니다. 의왕시의 곳곳마다 원림형 채마밭이 들어서서 자신만의 보금자리인 ‘마음의 텃밭’을 꾸미며 또다른 정약용, 유득공의 탄생이 이어지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pjhspee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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